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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이나어텐션
  • 기자명 강병환 칼럼니스트

[차이나어텐션] 노매드랜드(Nomadland)와 중화주의

  • 입력 2021.05.06 17:12
  • 수정 2023.11.21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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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매드랜드 포스터

‘미나리’로 윤여정(74)이 제93회 아카데미상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한국인 배우 최초의 오스카상 수상에 국내의 반응도 뜨겁다. 같은 날 클로이 자오(38, 자오팅 趙?, Chloé Zhao)는 노매드랜드(Nomadland)로 아시아계 여성 최초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았다. 그런데도 현재 한국과 중국의 반응은 정반대다. 지금 자오 감독은 중국의 변절자가 되어 있다.

그녀는 베이징에서 태어났다. 이혼 가정에서 자랐으며 그녀의 계모(繼母)도 중국에서 이름난 연예인 출신의 쑹단단(宋丹丹)이다. 중학생 때인 15세에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대에서 영화를 전공했다. 미국 흑인영화를 대표하는 스파이크 리(Spike Lee) 감독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올 2월 그녀가 골든 글로브 감독상을 받을 때까지만 해도 중국의 반응은 좋았다. 중국 매체들은 그녀를 중국의 자랑거리로 뽐내기 시작했지만, 아카데미에서 감독상을 받을 즈음 하루아침에 중국을 욕보인 쓰레기(辱華的敗類)로 낙인을 찍었다.

중국의 언론은 아카데미 시상식을 중계하지도 않았다. 수상 소식은 인터넷에서 봉쇄당했고, 이와 관련된 댓글은 모두 삭제되었다. 노매드랜드는 중국에서는 무의지지(無依之地)로, 대만에서는 유목인생(遊牧人生)으로, 홍콩에서는 낭적천지(浪跡天地)로 번역된다.

이제 노매드랜드는 영화 제목의 번역처럼 중국에서는 ‘의지할 곳이 없이’ 유랑하는 단어가 되었다. 원래 지난 4월 중국에서 상영하기로 하였지만, 광전총국(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은 아직 상영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이렇게 된 배경에는 그녀의 과거 발언이 문제가 되었다. 우선 2013년 필름 메이커(Filmmaker)에서 밝힌 일화가 인터넷을 통해 되살아났다. “내가 있었던 중국의 청소년 시기를 거슬러 가 보면, 곳곳에 거짓말이 난무하는 곳이다. 젊은 시절 얻었던 여러 정보는 모두 사실이 아니었다”. 더구나 2020년 호주 매체와의 인터뷰에서는 “지금, 나의 국가는 미국이다”고 밝혔다.

결국 인민일보의 자매지 환구시보가 그녀의 국적을 문제 삼았다. 3월 2일 영문판에서 “중국인인가 아니면 중국계 미국인인가, 중국의 네티즌은 골든 글로브를 수상한 자오팅(趙?)의 국적에 의문을 제기한다”는 기사를 실었다. 하루 전날인 3월 1일자만 해도 중국을 빛낸 인물로 축하했던 논조가 다시 하루 만에 그 입장을 바꾼 것이다.

아마도 “미국은 나의 국가다”라는 말이 귀에 거슬린 모양이다. 그러나 실제로 노매드랜드는 중국이 대내외에 선전하고자 하는 내용과 상당히 일치한다. 이 영화는 2010년대 이후 미국의 경제적 쇠퇴가 그 배경이다.

주인공 여성은 배우자를 잃고, 공장도 문을 닫는다. 직업을 잃은 주인공은 계절에 따라 운영하는 창고직 임시 직장을 찾아 나선다. 차를 집으로 삼고 세상을 떠돌면서 비슷한 처지에 있는 현대판 유목인들을 만나 뜻을 나누면서 사회체제의 질곡을 벗어나는, 미국 사회 저소득층이 겪는 고통과 위기를 생생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특히 중·미가 대항, 경쟁, 협력이라는 3중의 마라톤에 들어선 지금, 중국이 내세우는 동승서강(東昇西降, 동이 떠오르고 서가 진다)의 선전에도 부합하는 영화다. 그런데도 지금 중국은 지나치게 민족주의적 정서로 자오 감독을 보고 있다. 이와 유사한 중국의 연예인 탄압은 일일이 거론하기 힘들 정도다.

클로이 자오 (사진=페이스북)

흔히들 중국의 미래를 ‘자전거 타기’로 비유한다. 한쪽 페달은 경제발전이라는 바퀴에, 다른 쪽 페달은 민족주의라는 바퀴를 밟으면서 뒤뚱거리며 간다. 요즘 부쩍 중국의 자전거가 흔들거린다는 인상을 받는다.

이렇게 보이는 데는, 아이러니하게도 어쩌면 개혁개방이란 매우 성공한 국가 정책 때문일지 모른다. 개혁과 개방으로 개인의 사적 자유와 사유제, 시장경제의 폭이 과거에 비해 깊어지는 데 반하여, 민족주의는 중화민족이 걸어왔던 간난신고의 경험, 중국의 독특한 가치, 제국주의와의 투쟁과 독립을 위한 분투를 강조한다.

다시 말해 민족주의를 강조하면 할수록 배타적인 의미를 지니게 된다. 그래서 개혁개방과 중국이 강조하는 민족주의(중화주의)는 잠재적 모순을 안고 있는 셈이다. 아직도 대다수의 중국인은 아편전쟁 이후의 굴욕적인 백 년을 기억하고 있다. 더는 과거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과 국격에 맞는 중화민족의 존엄을 갈망한다.

이는 미국을 비롯한 국외의 도전에 대해서 두려워하지 않게 만드는 요인으로도 작용한다. 그러므로 중국의 민족주의가 제대로 승화되지 않는다면 편협한 국수주의로 변질하여 언제든지 폭발의 위험을 지닐 수 있다.

개방은 국제적 수준의 접목(接木)을 의미한다. 서구 국가나 적지 않은 해외 화교가 중국의 인권, 민족, 사법제도, 지적 재산권 등 여러 문제에서 날 선 비판을 가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지적에 대해서,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이를 가린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중국의 편협함만 더 드러낼 뿐이다.

지난 3월 미국 알래스카에서 열린 중·미의 고위급 회담은 시작부터 가시가 박힌 설전이 오갔다. 과거와 달리 중국은 미국을 앞에 놓고 거리낌 없이 미국의 인권상황과 흑인문제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런 중국의 거친 언설에 미국 국가안보보좌관 제이크 셜리번이 대꾸한 말이 기억난다. “중국이 말한 바처럼 미국도 개선해야 할 문제들이 많다. 자신감 있는 국가는 자신의 결점을 주시하고, 끊임없이 개선해 나가는 것이다. 이것이 미국의 힘이다”고 밝혔다.

과연 중국에서 노매드랜드가 상영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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