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민화' 모티브 작품으로 세계 무대 서는 양해일 디자이너 "패션은 그 나라, 그 민족의 문화를 입는 것"

김예진 기자 승인 2021.06.11 18:54 | 최종 수정 2021.06.11 21:30 의견 0

다채로운 색감이 어우러진 이태원역 뒷 길, 트렌디하지만 작업에 몰두하기 좋은 조용한 골목에서 양해일 패션 디자이너의 작업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화려하고 고풍스런 느낌을 주는 디자인은 패션부터 인테리어까지 그의 손길을 거치지 않은 부분이 없었다. 젊은 날 파리에서 패션을 공부한 그는 당시 배운 지식과 사용했던 가구, 그림, 소품 등을 그대로 한국에 옮겨왔다.

그의 오랜 단짝이자 아내인 마담양도 파리에서부터 함께 했다. 말 그대로 '파리의 연인'이다. 양해일 디자이너는 오랜 기간을 거친 파리의 숨결에 우리나라 전통 '민화'를 접목해 현대식으로 재해석한 한국의 패션을 선보이고 있다.

양해일 디자이너는 패션 학교인 '에스모드 도쿄(ESMOD TOKYO)'를 거쳐 '에스모드 파리(ESMOD PARIS)'를 졸업해 패션회사 '또랑뜨(TORRENTE) 오뜨꾸뛰르'에서 디자이너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프랑스 영부인 '마담 미테랑(Madame Mitterrand)'의 의상도 디자인한 바 있다.

양해일 디자이너


Q. 1980년대 당시 남성 패션디자이너가 많지 않았는데, 어떻게 패션 산업에 뛰어드셨어요?

양> 모델로 활동하던 중 패션 디자인에 대해 꿈을 갖게 됐습니다. 그래서 국내 의류과에 입학 준비를 했습니다만, 남자는 입학이 불가능하더라고요. 1980년대에는 패션 지망생들이 미국이나 일본 유학길에 올랐기 때문에 저 또한 유행의 정점이었던 일본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일본에 가니 패션의 메카는 프랑스 파리더라고요. 일본 학생들이 파리로 유학가는 것을 보고, '더 큰 패션세계가 있음'을 알게돼 1987년도에 파리 유학길을 선택했습니다.


Q. 자랑스러운 해외 활동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양> 2017년부터 지금까지 브랜드 '해일(HEILL)'로 파리패션위크 오뚜꾸뛰르에 참가하고있습니다. 그 전에는 DND라는 브랜드로 전 세계에서 열리는 패션전시형태인 쁘레타뽀르테(prêt-à-porter)에 참여해 수출하기도 했습니다.

아울러 평창 동계올림픽 홍보대사를 자원했는데, 호랑이를 주제로 패션쇼를 진행한 바 있어요. 마지막에 호랑이 인형 들고 인사할 때 자랑스러웠죠. 하하.


Q. '우리 전통과 문화를 재조명하기 위한 대표님의 대표적인 작품이나 컬렉션을 소개해 주세요.

양> 2019 SS컬렉션은 3.1운동,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태극기와 책가도를 소재로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대한민국의 상징성을 지닌 작품들은 해외에서 큰 반응을 얻었어요.

특히, 조바위를 모티브로 현대적 의상에 착장시켰는데, 그 형태나 디자인적인 부분을 많이 좋아해 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3.1운동,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라는 시의적 이슈가 있었기 때문에 패션을 통해 대한민국의 역사까지 소개할 수 있었어서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입니다.


Q. 전통 민화를 재해석한 작품이 많은데, 민화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를 말씀해 주세요.

양> 1987년 파리유학 중 '귀메(Guimet)박물관'을 방문해 민화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생활할 때는 잘 몰랐던 민화를 외국에서, 그것도 패션의 중심 파리에서 접하게 되니 신선한 충격을 받았고 영감을 얻었습니다. 민화는 가장 한국적인 소재이기도 하고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문화이기때문에 외국에 소개해야겠다는 일종의 사명감을 갖게 됐어요.


Q. 민화를 이용한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입니까?

양> 말 그대로 가장 한국인다운 삶을 가감없이 표현한 우리의 문화유산이라고 봅니다. 신윤복의 풍속도 등 우리 작품을 보면 느껴지듯 '자연스러운 우리의 모습' 그것이 민화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또 우리 문화 컨텐츠의 강점이 충분히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패션은 그 나라 그 민족의 문화를 입는 것이다'라고 생각해요. 민화는 전통의 삶을 담고 있기 때문에 이는 자연스러운 한국을 입는 것이기도 합니다.

양해일 디자이너의 작품


Q. 한국 디자이너가 만든 한국적 디자인에 대한 파리패션위크 등 현장의 반응이 궁금합니다.

양> 영국의 유명 팝 아티스트인 스티브 윌슨과의 일화인데요. 스티븐은 한국의 전통컬러인 '오방색'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2020 SS 컬렉션에 제 작품과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했습니다. 당시는 K-문화가 음악과 영화, 뷰티를 거쳐 패션으로까지 확대되던 시기였어요. 궁궐이나 전통의상에서 볼 수 있었던 전통 오방색을 현대패션으로 승화시킨 민화소재의 작품이 서양의 팝 아티스트를 통해 재창조된 것이죠.

동서양 장르의 융합이 이루어졌던 컬렉션이라 매우 의미있는 경험이었어요. 다만, 색깔이 없는 디자이너들도 있어 그 부분은 조금 아쉽습니다. '샤넬'하면 떠오르는 '트위드 재킷'처럼 한국 디자이너들도 자신만의 색깔을 정확히 갖고 간다면 명품 브랜드에 버금가는 패션의 가치를 창조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Q. 앞으로 풀어낼 또 다른 한국적 요소는 무엇이 있나요?

양> 아직 저는 전통 문화 분야에서 흥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2022 S/S에 선보일 소재도 조선시대 능행도에서 모티브를 얻어 작업하고 있어요. 물론 한국적 요소라는 것은 무궁무진하죠. 우리의 삶을 들여다 보면 전통뿐 아니라 현대사회에서도 찾을 수 있다고 봐요.


Q. 올해 가을 파주 임진각에서 선보일 '22 S/S 파리 패션위크 언택트 해일 패션쇼'를 살짝 맛 보여주실 수 있어요?

양> 능행도는 조선시대 왕이 그 선조를 찾아 예를 갖추는 행렬이라고 설명이 됩니다. 이가 갖는 의미는 절대군주인 왕이 백성을 위해 태평성대를 선대왕에게 기원하는 일종의 '메시지 전달의 행사'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따라서 평화를 상징하는 의미도 포함되기에 우리나라 분단의 상징이었던 파주임진각에서 세계 평화의 염원을 담은 패션쇼를 준비중입니다. 능행도에서 전달하고자 했던 평화의 메시지가 파주 임진각에서 세계로 전달되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 기대합니다.


Q. 한국적 요소를 현대 또는 서양 의상에 풀어내기 위한 작업 방식을 공유해 주세요.

양> 우선, 파리의 트렌드를 먼저 살펴보고 예측하기 위해 현지 지인들과 유선상으로 많은 교류의 시간을 갖습니다. 국내외 민화 전문가 그룹에서 항상 좋은 작품을 소개해주시고, 개인적으로도 전통문화 전문가들과 조우합니다. 그 가운데 작품에 대한 영감이 떠오르면 작업이 시작되는 것이죠.

늘 그렇지만 제 작품은 현대와 전통이 공존하고 상생하는 밸런스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세계의 패션흐름과 합쳐지며, 우리의 것을 또렷하게 살릴 수 있는 포인트가 전세계인들 사로잡는 이유라고 생각해요.


Q. 한국 패션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앞으로 걸어갈 방향에 대해 선구자로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양> 국내 디자인 능력은 세계 최고라고 자신합니다. 예술적인 감각은 물론, 창조력은 이미 다른 예술문화 분야에서 세계가 인정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브랜드 시대입니다. 세계가 열광하는 한국문화의 흐름속에 K-패션은 상대적으로 브랜드 파워가 약하다고 봐요.

패션 트렌드의 중심으로, 세계를 이끌어가는 리더로서 젊은 디자이너들이 당당하게 나아갈수있는 시스템과 환경이 필요합니다. 세계는 이미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에 열광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심이 되는 컨텐츠가 패션이 되는 날이 머지 않으리라 확신합니다.


Q. 마지막으로 '해일(HEILL)'의 미래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양> 한국의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것이 제 소명입니다. 더 많은 우리의 문화를 전세계에 알릴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고 싶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를 찾는 사람들에게 해일을 알릴 수 있는 '해일공간'을 만들 계획이에요.

그곳은 패션을 통해 우리나라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이고, 한국의 신진 디자이너들이나 한국의 패션을 배우고자 하는 해외 디자이너들이 함께 꿈을 꿀 수 있는 장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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