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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도형칼럼
  • 기자명 국도형 논설위원

[국도형 칼럼] 청년들이 얘기하는 개천에서 용나지 않는 시대? 청년의 눈으로 바라 본 진짜 용이 나지 않는 문제

  • 입력 2021.06.16 20:36
  • 수정 2021.06.16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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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들, 기회의 불균등을 떠나 일방적으로 사회적 약자로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 개선되어야
- 청년들 스스로도 의지하지 않고 자립하고자 하는 의지 갖추는 것 중요
- 밝은 미래를 생각한다면 오히려 사회적 약자 프레임에 갇혀 스스로를 죽이는 일 지양되어쟈야

수년 전부터 청년 후원 활동을 해왔다.

공동 설립자와 청년문화포럼을 설립하였고, 사무실 하나 없는 악조건 속에서 300명이 넘는 청년 활동가를 모으고 배출했다. 청년활동가가 뭐냐고? 청년인데 사회활동에 관심 갖고 활동하는 청년들을 우리는 청년활동가라 부른다.

그간 수 백명의 청년들을 현장에서 직접 만나고 부딪히며, 매일 같이 심각하다고 얘기하는 청년문제의 실체를 직시했다. 언론에선 하루가 멀다 하고 청년들이 힘들다, 청년들이 문제 다며 얘기하는데 현장에서 내가 느꼈을 때 어땠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표본에 대한 오차가 있을 수 있겠으나 적어도 나와 함께 단체 활동했던 청년들만 두고 봤을 땐 그렇다. 그들은 그냥 평범한 학생들이다. 그렇게 대단한 것도 없고 사회적으로 엄청난 영향력을 주는 것도 아니지만 하나하나 얘기해보면 그 누구보다도 자신의 삶에 열정적이고 자기 길을 찾고자 하는 이 시대의 평범한 청년들이다.

그렇다. 이 시대의 평범한 청년이라면 저렇게 돈 도 안 되는 일을 하기 위해 자기 시간도 투자할 줄 알고, 여러 사람과 교류하며 다양한 지성을 공유하기도 하는 그런 젊은이들이다. 나가서 시험공부하고, 술 마시고 놀 시간조차 부족할 텐데 그 시간에 더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는 친구들이니까. 얼마 차이는 안 나겠지만 적어도 나 어렸을 때보다는 훨씬 더 훌륭한 친구들이다. 같이 활동하는 청년들 보면서 '나는 저렇게 못 할 것 같은데'라고 수도 없이 생각했다. 이 정도면 청년의 기준이 상향 평준화되었다고 봐야지.

이렇게 훌륭하게 상향 평준화된 친구들을 두고 우리 사회는 '시대적 약자', '나약한 존재'로 평가하고 대접한다.

아니 왜? 이 친구들 진짜 훌륭하다니까요?

지난 추석 때였나.. 방송에서 나오는 뉴스를 보면서 밥 먹다가 숟가락을 집어던질 뻔했다. 명절 때 고향 못 가는 공시족들을 다루는 뉴스였는데 겉으론 그들을 위로하고 안타까운 사연을 전하는 듯했지만 그 안에는 공시족들을 바라보는 뼈아픈 사회적 시선이 느껴졌다.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절대 '명절에도 자신의 꿈을 위해 열심히 살고 있는 젊은이들' 이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공무원 시험이라도 매달려야 하는 이 시대의 불쌍한 청년들.'이었다. 내가 어떻게 이런 확신을 가지게 됐을까? 전체적인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다. 인터뷰 나온 청년들이 불쌍하게 그려졌으니까.. 공통적으로 '부모님 뵐 면목이 없어서 못 간다.' '눈치가 보여서 못 간다.'라는 얘기를 한다. 짜인 프레임이 있고 그 안에서 듣고 싶은 얘기를 내보낸 것이다.

이것 말고도 진짜 너무, 수없이, 셀 수 없이 겪은 일화가 많다. 어딜 가나 이 시대의 청년들은 약자이고 나약하기 때문에 보호받아야 할 대상으로만 얘기한다. 진심으로 이 글을 보게 될 많은 청년들께 질문 하나 하고 싶다.

'여러분 진짜 불쌍하고 나약한 사람들이세요?'

20~30대. 남들을 보호해도 모자랄 나이이다. 생물학적으로 가장 에너지 넘치고 힘이 좋을 나이이면서 사회적으로 책임질 것도 훨씬 적은 그런 좋은 시기에 있는 사람들이 바로 청년이다. 경험은 좀 부족할지언정 실패해도 얼마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그런 아주 좋은 조건을 가진 사람들이 이 시대의 청년들이다. 멀리 갈 것 없이 나도 아직은 청년이기 때문에 확실하게 얘기할 수 있다. 우리들은 절대 나약하지 않다.

보통 청년들을 나약한 존재로, 또는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사회적 시선에는 기회의 불균등, 자본의 세습화, 학력 인플레이션 등과 같은 내용들이 존재한다. 물론, 인정한다. 분명 이런 문제가 존재하고 경제 규모나 빈부의 격차가 지금보다 적을 때 보다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니까. 이로 인해 피해 보는 사람이 많다는 것도 알고 있다. 최근 불거졌던 정치인들 자녀의 대기업 입사 청탁 문제라든지 명문대 부정입학 문제.. 이런 것들 뉴스에서 볼 때면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다. 왜? 난 그런 혜택 받아본 적 없이 개고생만 해온 것 같거든.

근데 한 편으로 이런 생각이 든다. 이전 글에도 남겼지만 원래 세상 모든 일에는 명과 암이 존재하지 않는가? 어두운 암이 있으면 분명 밝은 명도 있을 텐데 유독 청년문제만큼은 명보다 암이 훨씬 더 강조된다. 나는 이런 것이 분명 정치적인 이유라고 확신한다. 여론은 필요해의 해 만들어지는 것이니까.

팩트만 가지고 얘기해보자. 도대체 그럼 어떤 시대의 어떤 청년들이 좀 덜 힘들었을까?

사회적 기회의 불균등이 과거에 없었을까? 타임머신을 함께 타보고 날아가 보자고. (갑자기???)

조금 멀리 가서 청년문제가 거의 없었을 것 같은 조선시대로 가보자. 아이고.. 신분제가 존재한다. 재수 없이 노비로 태어나면 그냥 청년으로 끼지도 못하고 노비가 된다. 너무 많이 간 것 같으니 해방된 이후 많이 가난했던 60~70년대로 거슬러 가보자. 청년문제를 논하기 전에 노동문제가 더 심각하다. 일은 시켰는데 임금을 안 줘.. 근데 처벌도 잘 안 받아 가진 놈들은.. 아 안 되겠다. 80년대 이후로 가보자. 여긴 그나마 좀 나은 것 같다. 경기도 활성화되고 도로도 깔리고 프로 스포츠도 생겨나고 경제 상태는 좀 나아진 것 같은데 이런.. 군부독재가 존재한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펜을 잡다가 민주화 운동을 위해 거리로 뛰쳐나갔다. 정부에서 군인들 동원해서 잡아가 두고 학생들 고문해서 간첩 만들고.. 청년문제를 논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닌 것 같다.

내가 좀 비약적으로 적은 것 인정하지만 과거 우리 사회는 청년문제라고 불릴만한 문제가 없었다. 아니 없었다기 보단 존재하지 않았다. 왜? 청년문제로 국한시키지 않더라도 그보다 훨씬 더 큰 사회문제들이 산재해 있었으니까. 근데 역사적으로 저런 문제들 해결해 온 핵심 세대를 보자면 대부분 2~30대 청년들이다. 노동운동, 민주화 운동을 당시 5~60대 기성세대가 주도했나? 연륜과 노하우 등을 통해 함께했지만 실질적으로 움직여가며, 이를 관철시킨 핵심은 누가 뭐래도 청년들이 중심이 되었다. 그리고 그때의 청년들이 지금의 기성세대, 그리고 정치인이 되었지.

그때의 청년들만 영웅이고 지금의 청년들은 지켜줘야 하는 나약한 대상이 되어야 하나? 그때 태어난 청년들은 다 무슨 히어로들의 자제들이라 슈퍼맨들만 그득한 것일까? 아니다. 다 알고 있겠지만 그때의 청년과 지금의 청년은 다르지 않다. 다른 게 있다면 그냥 태어난 시대가 다른 것뿐이다. 그 시대에 어떤 이슈와 환경이 존재했느냐만 다른 것이다.

근데 왜 이렇게 두 청년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른 것일까?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 환경에 적응하게 되어 있다는 뜻이고, 주변 환경이 어떠냐에 따라 그 안에 속한 인간도 변화하게 되어있다. 이건 뭐 굳이 설명 안 해도 그동안 수많은 연구와 논문을 통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믿는다. 결국 시대와 환경이 어떠냐에 따라 만들어지는 청년의 모습도 다르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지금 우리 시대의 청년들은 그들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환경적인 요인에 따라 그것에 걸맞은 청년의 모습이 탄생된다는 얘기이다.

근데 지금 우리 사회는 청년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혹시.. 아까 그 뉴스에서 불쌍하게 바라봤던 명절에 집도 못 가는 공시족?

진짜 짚어야 하는 문제는 어쩔 수 없이 공무원 시험을 봐야 하는 그 청년들이 아니다. 그들을 그렇게 만든 사회적 기조와 시스템이 문제인 것이다. 자기들이 그렇게 만들어 놓고 쯧쯧쯧 하면서 보호하고 지켜줘야지 라고 얘기하는 것은 가해자가 피해를 입힌 피해자를 바라보며 그것을 동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이랑 똑같은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청년들에게 실례하고 있는 것인지, 또 청년들은 그런 동정 어린 눈빛을 받아들이고 순응하는 것이 얼마나 굴욕적인 일인지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그래서 더 신경 써주는 것이라고? 내가 하고자 하는 얘기가 바로 이 것이다. 방법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됐다. 아무리 당차고 도전정신 투철한 사람이라도 옆에서 계속 나약하다 약하다 보호해주겠다 얘기해보라. 가만히 앉아있어도 밥이랑 반찬 떠다 주는 분위기 속에서 자기가 직접 밥을 해 먹으려고 농사짓고 개고생 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어느 세대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좋은 점이 있으면 좋지 않은 부분도 있는 법이다. 비록 지금의 청년세대가 과거로부터 이어진 주입식 교육과, 빈부의 격차로 인해 집한 채 사는 것이 힘든 세대라고 한다면, 반대로 24시간 내내 지구 반대편에 있는 외국인과 정보를 나눌 수 있는 인터넷과, 언제든 내 의견을 당당히 표출할 수 있는 자유를 갖춘 세대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무역을 하기 위해 직접 그 나라에 한 달씩 방문하여 직접 시장을 탐색해야 했지만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각종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클릭 몇 번으로 내가 구입하고자 하는 해외 물품들을 구입하여 국내에 되파는 것도 가능하다. 과연 이런 시대에 청년들을 향해 과잉 친절과 보호를 베풀 필요며 불쌍하다 말할 이유가 있는 것인가? 청년들은 그 친절과 보호를 당연히 받아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자신을 스스로 약한 존재가 되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인가?

진짜 문제는 지금 당장이 아니라 그 이후이다. 배고파서 곧 죽어가는 사람에게 일용할 수 있는 양식을 베푸는 것은 사람의 도리로써 바라 볼 문제이지만 그 사람이 일하지 않아도 밥은 먹고살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어 아무것도 하지 않게 만드는 것은 오히려 그 사람을 망치는 길이다. 기회는 항상 위기 속에 존재하고 위기에 대한 스트레스를 감내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기회조차 얻을 수 없다.

좀 본질적으로 청년 문제를 바라봤으면 한다 수많은 청년들이 왜 공무원이 되고, 대기업만 생각하고, 공기업 들어가는 것을 무슨 과거급제하는 것처럼 생각할까? 왜 그들이 자신의 적성이나 재능이 무엇인지, 꿈을 이룬다는 것이 비현실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할까? 엄청나게 많은 이유들이 있겠지만 그 핵심에는 위험을 감내하지 않으려는 습성에 있다. 이 사회는 청년들에게 위험한 일을 하지 말고 그냥 안전하고 잔잔하게 살아가길 강조한다. 중, 고등학교에선 좋은 대학교 못 들어가면 내일이 없는 것처럼 얘기하고, 그렇게 죽어라 노력해서 좋은 대학교 들어간 뒤 좋은 직장 못 들어가면 사회에 똥덩어리가 되는 마냥 부끄럽게 만들어 버린다.

이렇게 갖춰진 틀 안에서 만에 하나 조금이라도 이상행동을 하려 한다면 그 사람은 비현실 주의자이자 이상만 가득한 미친놈이 되어버린다. 이상행동이 뭐냐고? 좋은 대학 나와서 좋은 기업이나 공무원 안 하고 창업하거나 중소기업 프리랜서 활동 같은 일 들을 두고 얘기하는 것이다. 아니.. 인간이 왜 사는지에 대한 이유도 모르는데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규정을 짓고 있다니.. (여러분 그런 규정이나 법 같은 것 없어요.)

여하튼, 그런 환경에서 자라온 그들에겐 자연스럽게 이런 메시지가 전달된다.

'개천에서 용 나는 시절은 지났으니 헛생각하지 마라'

이런 과정을 거치다 보면 그 사람의 직업 선택에 있어 최우선 되는 가치는 어느새 자신의 적성이나 흥미, 재능 따위가 아닌 오로지 '철밥통'과 많은 급여, 그리고 잘 사용도 하지 않을 기업 복리후생의 개수 따위가 척도로 정해져 버린다.

훌륭한 교육은 가만히 앉아서 책을 보며 사냥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한 번이라도 현장에 나가 사냥을 시키고 자신의 것을 만들어 훌륭한 사냥꾼으로 만드는 것에 주안점을 둬야 한다. 사냥 기술을 책으로만 익힌 사람은 사냥터에 나가서 제일 먼저 죽는 사람이 된다.

하지만, 어쩌겠나. 교육을 예시로 들긴 했지만 이건 수십수백까지의 이유 중에 하나일 뿐 모든 청년문제의 근원은 아니라고 본다. 그럴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들이 존재하겠지.

여하튼 결론적으로 이것을 다 때려잡고 고치려면 엄청난 시간과 사회적 비용이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난 그런 현실 가능성 부족한 (내가 감히 손댈 수 도 없는) 소모적인 '다 뜯어고치자'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어차피 엎질러진 물이니 그냥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청년들 스스로가 당당하게 자기 삶을 살아가자 라는 얘길 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 강제로 사회적 약자 만들어가며 프레임 씌우지 말라는 거다.

그런 의미로 이 글을 보고 있을 청년 아무개께 이 말씀을 전한다.

'개천에서 용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개천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용이 되는 것입니다'

진짜 용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용의 새끼로 태어난 사람들은 애초에서 개천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진짜 용이 되고 싶은가. 자신을 나약하게 만드는 수많은 사회적 시선과 주변의 조언 같은 것들 뿌리치고 조금 굶고 힘들더라도 가야 할 길을 가라. 사회적으로 약자 취급받을 때는 그것을 고맙게 여길 일이 아니라 화내고 분노해야 한다

이런 문제를 올바로 직시하고 고쳐나가려 할 때 비로소 당신은 진짜 용이 될 것이다.

이 글을 보는 혹자는 그렇게 얘기할 수 있다. '당신은 이미 가진 사람이기에 그렇게 쉽게 얘기하는 거 아닙니까?'

굳이 표현하자면 가진 사람이 아니고 작게나마 이룬 사람일 뿐이다. 그래서 친절하지는 못할지언정 진심을 담아 떳떳하게 얘기할 순 있다. 적어도 사업을 하기 전 대한민국 하위 10% 안에 들어갔다고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다. 역설적으로 가난이 나를 이룰 수 있게 만들어줬다. 그렇기에 약간의 부족함이 사람을 성공으로 이끌어 낸 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제발 이제 청년 위한답시고 그들을 나약하고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만 치부하지 말자. 그런 분위기가 청년을 더 약하고 아무 힘없는 존재로 만들어낸다.

제발 바다에서 태어난 청년들을 개천으로 내몰지 말라

청년들, 당신들은 결코 나약하거나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가 아니다.

힘든 것 알지만 그럴수록 스스로를 약자로 만드는 분위기에 휩쓸리지 말자.

개천에서 용은 분명히 탄생한다. 당신이 용인 것을 스스로 아는 순간 말이다.

혹 내 글이 조금 불편한 분들이 계시더라도 양해해주길 바란다.

100마디의 위로는 마음을 편안케 하지만 1마디의 냉철한 상황 파악은 한걸음을 나아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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