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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인터뷰] 미래는 알 수 없지만 현재는 바꿀 수 있죠(上)

2015년 강원 9급 일반행정직·국가직 7급 방재안전직 합격자 정산


회사가 전쟁터라고? 밀어낼 때까지 그만두지 마라. 밖은 지옥이다.”


인기 웹툰 <미생> 속 한 장면이다. 비록 허구의 이야기지만, 치열한 경쟁과 과중한 업무에 치이는 직딩의 고충도 누군가에게는 부러운 일상이 될 수 있다는 <미생> 속 메시지는 불황의 늪에 빠진 현대인들의 공감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특히 비교적 안정적인 월급쟁이 생활을 하다 치열한 생존경쟁이 펼쳐지는 자영업의 세계에 뛰어든 이들은 지옥이라는 표현에 더욱 공감한다. 가게 임대료와 사업을 위해 빌린 대출금, 소모품 구입이나 재료비, 기타 운영비 마련을 위해 일 매출에 목숨을 걸어야 하고 경기 변동에 따른 영향도 매우 커 하루 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직장인에게 실패란 다음 직장으로 이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지만, 자영업자에게 실패는 그래서 재기불능의 파산을 의미한다. 자영업에 실패한 이들이 빈곤의 악순환에 갇히는 이유다.


지난해 국가공무원 7급 방재안전직과 9급 지방공무원 시험에 동시에 합격한 정산씨도 지옥같은 자영업의 세계를 경험한 이들 중 하나였다. 무역회사에서 평범한 직장인 생활을 하다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마흔이 넘어 사회로 떠밀려나온 그에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노량진에서 작은 중고서점을 운영해보기도 하고 허름한 밥집을 차려도 봤지만, 자영업으로 버는 돈으론 생계유지조차 버거웠다


그러나 노량진에서의 실패는 공무원이라는 제2의 인생을 열어준 문이기도 했다. 몇 년이 지나도 노량진을 떠나지 못하는 장수생들을 돕기 위해 코칭을 시작하며 수험서를 손에 잡은 것이 계기였다


적지 않은 나이와 힘든 생활여건, 6개월의 짧은 시간이란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그가 합격할 수 있었던 비법은 무엇이었을까. 여전히 노량진에서 수험생들을 위한 상담과 공부법 코칭을 계속해오고 있는 정산씨를 만나 그의 솔직한 합격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어려운 여건에서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어떻게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게 되었는가?


A. 원래 그렇게 가난하게 살았던 사람은 아니다. 예전에 수학학원을 운영했을 때만 하더라도 먹고 살기가 괜찮았다. 회사를 다니다가 나이 마흔이 넘어 자영업에 뛰어들었는데 회사 밖을 나가면 그야말로 전쟁터다. 사기도 많이 당했다. 노점상을 하면 또 돈이 될까 해서 다 해봤지만 잘 되지 않았다. 그렇게 3년의 시간을 보냈기에 고민이 굉장히 많았다. 내가 여기 왜 있는지,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지 원론적인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다 노량진에 있는 수험생들을 코칭해주면서 행정사 시험에 붙게 됐고 그 후로 공무원 시험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됐다. 사실 합격할 자신은 없었다. 경쟁률도 너무 높고 대형학원을 몇 년씩 다녀도 불합격하는 학생이 많다보니. 게다가 나이가 많아서 지금 공직사회에 들어간다고 해도 내가 적응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구심도 들었다. 내 나이 또래의 사람들이 많이 고민하는 부분일 것이다.

 


Q. 학원 강의나 전공을 통해 공무원 시험에 필요한 기본 지식을 갖춘 상태였는지?

 

A. 학원은 다녀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대학시절 주전공은 경영학이었고 법학을 부전공으로 공부한 적 있다.

 


Q. 사업을 원래 해야겠다는 욕심이 있었는지?


A. 살면서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대학시절엔 과외를 많이 했다. 나이를 먹으면서 다른 사람 집에 방문하는 게 점점 싫어져서 나중엔 조그만 교습소를 운영했는데 처음엔 2명 정도만 왔다가 점점 학생들이 많아졌다. 가르치는 일 외엔 공부를 해서 자격증을 딴 뒤 사무실을 차리는 것이 꿈이었던 것 같다. 법학이 재밌어서 부전공을 했기 때문에 법무사도 꿈꿨지만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님도 미용실 일을 하시는 데다 지적장애 조카도 있다 보니 법무사를 준비할 만한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Q. 장애인 문제에 관심이 많겠다.


A. 그렇다. 여기 와서도 만난 친구들 중에 청각장애 친구들이 많았다. 그 친구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너무 힘들다. 노량진에 있는 사람들 중 밥을 굶는 이들도 많다. 천 원짜리 빵 하나로 견디는 사람들도 있고 무작정 상경을 하는 애들도 많다. 그런 아이들 틈 안에서 먼지 풀풀 풍기면서 살았던 것 같다. 나도 모르는 지식이지만 , 이 문제는 이렇게 푸는 거야라고 얘기도 해주고.

 


Q. 어려운 시간을 많이 겪었는데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A. 학교 생활을 할 때 3수를 해서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시절 남미에서 특례로 입학한 한 선배를 만났는데, 그 분한테서 좋은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그 선배가 십 원 한 푼도 없이 서울에 왔다. 도서관 나무의자에 신문지를 덮고 잘 정도였다. 나는 그때 과외를 했으니까 돈이 있어서 밥도 사주고 이것저것 해드렸는데 그 분은 밥 한 끼로 하루를 버티는데도 항상 즐겁고 밝아 보였다. 자연스레 나도 저렇게 살아야겠다라는 생각을 갖게 되더라. 아무리 힘들어도 사람은 견뎌내야 하고 분명히 좋은 일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 좋은 방향으로 일이 풀리기 마련이다. 누군가에게 그런 좋은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큰 축복인 것 같다. 살면서 자살 생각을 한두 번 정도 하긴 했지만, 그런 경험이 나를 버티게 했다. 공무원 시험을 공부할 때도 낭떠러지 끝에 내몰린 상황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여기서 더 밀리면 갈 데도 없으니 최선을 다하자란 생각을 하며 6개월간 밤을 새며 공부했다.

 


Q. 일을 하면서 공부를 병행하기가 굉장히 힘들었을텐데.


A. 일한 시간들을 빼고 순수하게 공부한 시간을 합치면 100일 정도밖에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지하철을 탈 때나 길을 걸어가면서도 짬이 날 때마다 책을 손에 놓지 않았다. 비록 낮에는 일을 해야 해서 공부할 시간이 부족하긴 하지만, 밤을 새워 공부하면 합격도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Q. 어떻게 수면시간을 줄여가며 공부하는 게 가능했는지?


A. 사람이 계속 잠을 8~9시간 자다가 갑자기 한 시간을 덜 자면 엄청 피곤해한다. 그렇지만 한 번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시간까지 공부를 해보길 권한다. 예를 들면 새벽 5시까지 해보는 거다. 한동안 그렇게 공부를 하다가 새벽 3시에 자면 아침에 일어나도 몸이 가뿐하다. 2~3주 정도만 그렇게 훈련을 하면 누구든지 그렇게 할 수 있다. 시험에 합격하려면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는 방법밖에 없다. 원래 직장생활을 할 때 난 어떻게 하면 이번 주에 편하게 지낼까 고민하는 편이었는데 노량진에 와서 밥을 굶어보니까 정신이 번쩍 들더라. 밖에서 자영업을 하면 생존을 걱정하게 된다. 뭐라도 해야 한다는 절박한 생각밖에 안 든다.



Q. 공무원 시험은 언제 처음으로 응시한 것인지?


A. 작년 418일에 국가직 9급 시험을 아무것도 공부 안한 상태에서 처음으로 봤다. 수학 강사를 했으니 당연히 수학을 잘해야 하는데 그 날 얼굴이 벌개져서 나왔다. 시간 안에 문제를 풀기가 너무 힘들었다. 만약 지금도 수학을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살았다면 정말 부끄러웠을 것이다. 그 날 느꼈다. ‘이 시험은 지문도 길고 깊이 공부해서 푸는 시험이 아니구나라는 것을. 그 뒤로 이렇게 촉박하게 진행되는 시험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Q. 합격한 이후 장수생들로부터 보이는 실패의 원인이 있는가?


A. 장수생들은 하나같이 실패에 너무 젖어있다. 하지만, 나도 그 친구들과 같은 상황이라면 똑같았을 것이다. 더 좌절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경험상 적당히 절박하면 타협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정말 죽을 것 같이 힘든 위기가 찾아오면 피하지 않고 부딪쳐서 아파해야 한다. 내가 아프니까 더 이상 아프기 싫다는 의지가 중요하다. 하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이 피하고. 적당히 이 정도만 하고 내년에 할까라는 생각을 하며 자기합리화를 한다. 나이를 먹으며 깨달은 것이 과거는 바꿀 수 없고 미래는 모르지만, 현재는 바꿀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생각으로 도전했다. 장수생이라는 딱지를 달게 된 것이 자기 의지는 아닐 거라 생각한다. 식당을 운영하며 알게 된 장수생들의 얘길 들어보면, 모두들 1년만 노량진에서 공부하고 탈출하려 했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그리고 장수생들 중 상당수는 공부하는 방법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차라리 아예 백지상태라면 지식을 받아들이기도 쉬운데 들은 게 많아 팔랑귀가 되고 잡기술에 관심을 갖는 경우가 많다. 그건 공무원 시험에 치명타다. 잡기술만으로는 고득점을 얻을 수 없다. 정석으로 책 한 권을 정독하며 반복학습을 해야 합격할 수 있다.

일반 언론사들은 공시생을 항상 노량진에 있어왔던 무리로 취급하고. ‘원래 힘든거니까식으로 생각하며 관심을 잘 갖질 않는다. 하지만 그 친구들 사이에서 있다 보면 정말 힘들어서 우는 친구들이 한두 명이 아니다. 당장 내일 끼니 걱정을 해야 하는 그런 친구들이 많다.

공무원 시험은 오래 한다고 되는 시험이 아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친구들은 1년 이상 해도 된다고 쳐도, 내가 학벌도 안 되고 배경도 좋지 않아 공시를 택하는 사람들은 분명한 생각을 하고 들어와야 한다. 대충 공부하다가 폐인이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앞서 합격해 노량진을 탈출한 사람들도 그에 대한 고민들을 했을 텐데 이 노량진엔 흔적이 없다. 항상 새내기, 그리고 대형학원의 사이클이 반복된다. 어느 누구도 그 수험생들에게 이런 합격의 길이 있다고 얘길 해주질 않는다.

인생엔 지름길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 지름길은 굉장히 험하다. 잠도 줄여야 하고 고민도 제대로 컨트롤해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하고 남들이 천천히 밥 먹을 때 김밥 하나로 빨리 식사를 때우고 공부해야 하는 등 남들보다 힘든 길을 걸어가야 한다. 빠른 합격을 위해선 그런 길을 택할 수밖에 없다.

 


Q. 수험서는 어떤 것으로 공부했는가?


A. 국어는 시중의 얇은 문제집(요약집, 기출문제집)을 샀고 부족한 게 있으면 포털에서 맞춤법을 찾아봤다. 문학작품도 다 검색하면 스토리가 나온다. 그런 방식으로 생각하는 공부를 했다. 예를 들어 공부해야할 양이 총 150페이지일 경우 하루 20페이지씩 읽으면 일주일이면 다 볼 수 있다.

그 다음에 두 번째로 볼 때는 왜 이게 답인지 원리가 뭔지 고민하며 봤다. 보통 수험생들이 많이 본다고 하는 수험서들은 엄청 두꺼워서 그런 건 볼 엄두가 안 났고 어차피 객관식 20문제니까 굳이 두꺼운 문제집을 봐야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적당한 양의 수험서 한 권만 팠다. 많은 수험생들이 하루는 국어만 공부하고, 다른 하루는 영어만 파는 식으로 분절을 해가며 공부를 하는 편이다. 하지만 공무원 시험은 어차피 100문항을 딱 100분간 푸는 시험이다. 그래서 그냥 100문제로 이뤄진 하나의 시험이구나라는 생각으로 공부했다. 국어 2시간, 영어 2시간, 한국사 2시간, 이런 식으로 하루에 시험 과목 전반을 학습했다. 사실, 수험서 한 권만으로도 합격은 충분히 가능하다. 보통 사람들이 똑같은 영화를 2번째 보면 스토리를 알기 때문에 아 다음 장면이 무엇이겠구나라고 예상한다. 3번째 똑같은 영화를 볼 땐 그 다음에 정확히 어떤 장면이 나오는지를 알게 되고 4번째 볼 땐 아예 대사마저 외우게 된다. 공부도 똑같은 이치다. 수석한 사람들이 교과서만 봤다고 하는 게 거짓말이 아니다.

 


Q. 공부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과목은?


A.시간이 하도 급박하다보니 그냥 미친 듯이 공부해서 어렵다거나 쉽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 길을 걸어가면서도 뭔가 이해가 안가는 문제가 있으면 끊임없이 머릿속으로 그 문제만 생각했다. 국사는 흐름이 매우 중요해서 조카가 보는 20권짜리 역사 만화책부터 봤다. 딱딱한 수험서만 보다가 그걸 보니 너무 재밌어서 앉은 자리에서 다 읽게 되더라. 특히 현대사 파트부터는 무장투쟁 때문에 외우기가 헷갈리는데 만화책을 보면서 쉽게 공부할 수 있었다. 공부는 확실히 재밌어야 하는 것 같다. 특히 나의 경우에는 공부하는 시간이 낙이었다. 밖에 나오면 돈 걱정해야 하고, 뭐 시도하면 망하지. 얼마나 골치아픈 일이 많은지 모른다. 차라리 공부를 하면 뭔가에 몰두를 하게 되니 잡생각도 나지 않아 좋았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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