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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인터뷰] 미래는 알 수 없지만 현재는 바꿀 수 있죠(下)

2015년 강원 9급 일반행정직·국가직 7급 방재안전직 합격자 정산






A. 어머님이 칠순이 넘으셨는데 아직도 일을 하신다. 제대로 용돈도 못 드리고 돌봐드리지 못해 미안한 마음 뿐이다. 내가 공부를 한다고 했을 때 가족은 말할 것도 없고 주변 사람들 모두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마흔이 넘었는데 어떻게 합격하겠느냐라는 식이었다. 그래서 밤을 새워봐야겠다라는 각오로 시작했다. 시간만 나면 무조건 책을 잡고 공부했다. 집사람이 잠깐 친구를 만나러 가면 도서관에 가서 공부했다가 집에 와서 노는 척 했고, 시험 당일에도 공무원 시험을 본다는 말은 안하고 토익시험을 치른다는 핑계로 나갔다왔다. 혼자 몰래몰래 공부를 했는데 새벽마다 배가 고파서 미숫가루를 엄청 타먹었던 기억이 난다. 배고플 때마다 미숫가루를 한 사발씩 먹으면 조금 힘이 나더라. 그렇게 내가 어떻게 시험을 봤는지도 모를 정도로 미친 듯이 공부를 했다. 시험 보러 가는 날에도 카드대금이 연체 중이라는 문자가 왔지만, 시험이 시작되면 그런 것에서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A. 매일 5~6시간 동안은 집중하며 공부했다. 낮에는 수험생 몇 명을 가르치기도 했고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해야 했기에 보통 수험생들처럼 편하게 앉아서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길을 걸어 다니면서도 계속 공부했다. 앉아서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은 밤 11시부터 새벽 5시였기 때문에 눈이 항상 충혈 돼있는 상태였다





A. 내가 영어를 좀 가르쳐주던 한 장수생이 있었다. 그 친구가 교행 7급을 지원하고 싶다면서 코칭을 좀 해달라고 하기에 직렬별 경쟁률을 살펴보니 경쟁률이 너무 높아 만류했다. 그러던 중 방재가 눈에 띄었다. 그래서 방재안전직에 대해 찾아봤는데 신설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정보가 없었다. 순간,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대로 된 교재도 없고 거의 첫 시행이기 때문에 오히려 합격에 유리할 것 같았다. 그 친구가 이걸 어떻게 준비하면 되냐고 묻기에 일단은 원서를 접수하자고 말했는데, 학원에 물어보니 아직 책을 낼 계획이 없다고 하더라. 결국 나 때문에 그 친구도 원서를 접수했으니 책임감이 느껴져서 나도 원서를 넣고 방재안전직 시험을 위한 책을 한 번 써보겠다고 말했다. 일단 서점에 가서 방재, 소방, 안전과 관련한 책을 모두 샀다. 그날부터 밤을 새서 법조문과 중요한 내용들을 위주로 책을 쓰기 시작했다. 2014년에 방재안전직 시험을 봤다 떨어진 친구를 포함해 여섯 명이 그렇게 만든 자체교재를 바탕으로 공부를 했고, 두 달 동안 나까지 합쳐 총 4명이 방재안전직에 합격할 수 있었다





A. 그럴 땐 그냥 책을 찾았다. 헌책방을 자주 가는 편인데 그 내용과 관련한 책을 찾아서 궁금증을 해결했다. 내가 알고 있는 진리가 있는데 쉽게 얻는 것은 쉽게 잃는다는 것이다. 내가 알기 위해서 노력하는 과정이 굉장히 중요하다. ‘왜 이게 답일까’, ‘어떻게 하면 이 지식을 안 잊어버릴 수 있을까와 같은 고민을 많이 했다.

 




A. 있었다. 먹고 사는 고민이 워낙 컸기 때문에 어떤 일을 해야 하나라는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고민을 해도 근데 어차피 해결이 안되니까 그 시간을 유익하게 보내자는 생각으로 슬럼프를 극복했다. 시행착오를 워낙 많이 겪었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이지, 처음부터 특별해서 깨달은 것이 아니다.

 




A. 혼자서 준비하는 게 불안해서 책을 세 권이나 샀다. 그런데 면접의 정답은 없다. 자신의 의견을 얘기하는 거니까. 평소 생각했던 것을 얘기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굳이 시험 공부하듯 준비해야 하는 부분은 아닌 것 같다. 순수하게 면접을 준비한 것은 3일 정도였다. 내가 한 얘기 중에 하나 꼬투리를 잡아서 따라가는 질문이 바로 압박질문인데, 그것도 평소에 친구와 연습했던 것처럼 편안하게 대답하고 나왔다







A. 사실 하고 싶은 얘기가 굉장히 많았다. 노량진에 살아보니까 김밥과 라면이 주식일 정도로 가난하고 배고픈 이들이 많다. 노량진의 밤과 새벽을 항상 봐왔지만, 여기엔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길을 알려주는 사람이 없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긴 했지만 원래 공무원이 되겠다는 꿈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시험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수험생들에게 나름대로의 대안을 제시해주고 싶었다. 결국 당신이 뭔데 코칭을 하냐?”는 사람들의 말에 시험장까지 가게 됐고, 수험생들과 함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게 됐는데 합격하고 나니 사람들의 태도가 조금은 달라진 것 같다.

공무원 시험이 도박과 비슷하다. 주위에서 된다고 용기를 실어주니 나도 하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런 속성 때문에 대출을 받아가며 공부하다 부채를 많이 지는 수험생들도 상당수다. 나도 그런 수험생들과 입장이 같았다. 탈출구를 찾아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미로 찾기를 했던 경험이 에세이집을 쓰게 된 동기로 작용했다





A. 공무원 수험생 입장에서 좋은 기사와 모의고사가 많아 공무원저널을 자주 애독했다. 특히, 수험생들은 정보에 대한 갈증이 큰데 유익한 수험정보를 무료로 볼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방재안전직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된 것도 공무원저널 기사를 통해서였다.





A. 그동안 사회생활을 하며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려고 노력해왔는데 공직사회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통해서 모두에게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또 공무원 수험생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들이 많다. 여기서 많은 이들이 합격해서 탈출했겠지만 경쟁이 치열해서 그런지 다소 이기적인 것 같다. 노량진에서의 고통을 빨리 잊으려고만 하지, 다른 수험생들과 자신의 공부기술을 공유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 그래서 앞으로 주말마다 시간이 나면 내가 수험생들의 멘토 역할을 하고 싶다. 합격할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정확한 방향과 기술을 알려주는 조력자가 있다면, 누구나 목표를 성취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노량진에 머물고 있는 수험생들에겐 공무원 시험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 것인지. 공무원 시험을 도전해볼까 하는 이들에겐 무턱대고 공무원 수험가로 오지 말고 자신 없으면 하지 말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누가 시켜서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니까’, ‘적당히 학원 다니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는 도전하면 안 된다. 성공을 하려면 성공할 수 있는 노력을 그만큼 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