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두천 30.4℃
  • -강릉 30.9℃
  • 구름많음서울 31.1℃
  • 구름많음대전 33.0℃
  • 맑음대구 34.0℃
  • 맑음울산 30.2℃
  • 맑음광주 30.6℃
  • 맑음부산 28.8℃
  • -고창 29.4℃
  • 구름조금제주 29.3℃
  • -강화 27.3℃
  • -보은 30.0℃
  • -금산 30.7℃
  • -강진군 28.2℃
  • -경주시 30.5℃
  • -거제 28.6℃
기상청 제공
배너

[필진 칼럼] 노량진 풍경

침체의 길을 걷고 있는
노량진 수험가를 바라보며

 나는 노량진에 소재한 고시학원에서 지난 1991년부터 27년 간 공무원 수험생들을 지도해왔습니다. 현재 노량진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강사들 중에서 가장 노장급에 속하는 사람이고, 그런 만큼 지난 시절 노량진의 변화를 모두 경험하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나의 관점에서 볼 때에 요즘의 노량진 학원가는 지난 시절에 비해 엄청난 변화를 보이고 있습니다.


90년대의 노량진은 고시학원보다는 대입시학원이 좀 더 성황을 이루었습니다. 대학입시학원의 상징이었던 대성, 한샘, 정진, 제일학원을 비롯해 수많은 대학입시학원들과 그곳에서 공부하는 엄청난 재수생들로 인해 노량진 일대에는 참으로 많은 대학입시 수험생들이 머물렀습니다


공무원 수험생들은 그 곁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게 별로 자랑스럽지 못한 심정으로 조심조심 생활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그때만 해도 공무원은 그다지 인기 있는 직업이 아니었고, 공무원 수험생활이 그리 자랑스럽지 못한 시절이었습니다. 이 무렵에 노량진에서 잘 나가는 공무원 학원은 제일, 한교, 남부행정고시학원이었지요.


2000년대에 들어와 노량진은 일대 변화를 맞이합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이 늘어나고 대입 수험생들은 점점 줄어들면서 노량진은 공무원 수험생들의 숫자가 대학입시생들을 능가하게 됩니다. 공직이 인기를 끌고 대학생들의 사기업 취업이 줄면서 공직에 지망하는 수험생들은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절 이름 있는 고시학원은 등록을 하기 위해 밤새 줄을 서는 수험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기도 하였습니다. 내가 근무하던 고시학원도 그런 곳 중의 하나였지요. 이때부터 노량진은 고시를 준비하는 수험생들이 주류를 이루던 신림동과 더불어 공무원 시험의 중심지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런 현상은 무려 15년 이상 지속되었습니다


이 무렵에는 비단 고시학원만이 아니라 그와 연계된 서점, 복사집, 고시원을 비롯하여 고시식당, 심지어 길거리의 컵밥집과 과일장수에 이르기까지 장사가 잘 되지 않는 곳이 없었습니다. 학원 강사들의 수입도 매우 높아서 강사들에 대한 우리사회의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화한 시기였습니다. 바야흐로 노량진 공무원 시장의 최전성기였다고 할 수 있지요.


그랬던 노량진에 서서히 변화가 시작된 것은 3~4년 전부터였습니다. 실강을 듣기보다는 인강을 듣는 수험생들이 늘어나면서 굳이 노량진까지 와서 학원에 다닐 필요성이 감소하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노량진에 거주하는 수험생들의 수가 서서히 줄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변화의 원인에는 장기간 계속되어 온 경기침체 탓이 컸습니다


경기가 좋았던 시절에는 부모님들이 웬만하면 자녀들을 노량진에 보내서 효과가 월등히 좋은 실강을 들으며 공부하도록 하였었지만 경기침체가 지속되면서 노량진 유학비용을 감당하기 힘든 부모들이 늘었습니다. 수험생 자신도 부모님께 무리한 도움을 청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 되었기도 하지요. 그런 이유로 노량진은 서서히 쇠퇴하기 시작했고, 그 명확한 증거는 고시식당의 폐업과 고시원의 공실률 증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노량진이 어떻게 변화할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과거보다 더 발전할 수도, 아니면 쇠퇴 속도가 더욱 가속화 될 수도 있겠지요. 지난 27년 간 이곳에서 생활해 온 나도 머지않아 노량진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오래 생활해 온 나의 기억은 오랫동안 아름답게 남아 있을 것입니다. 30년 가까이 나의 청춘을 쏟아 부은 곳이기에


진용은 교수

KG패스원 공무원 학원

법원·검찰 학원 원장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