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두천 30.8℃
  • -강릉 30.7℃
  • 구름많음서울 32.6℃
  • 구름많음대전 32.8℃
  • 구름조금대구 35.4℃
  • 구름조금울산 31.5℃
  • 구름많음광주 31.6℃
  • 맑음부산 29.1℃
  • -고창 30.3℃
  • 구름많음제주 31.5℃
  • -강화 29.4℃
  • -보은 32.2℃
  • -금산 32.7℃
  • -강진군 30.2℃
  • -경주시 32.7℃
  • -거제 29.7℃
기상청 제공
배너

[기자 칼럼] 단 한 발

공시생들에게 용기에 박수를 보내며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는 시로 우리 부모님 세대에게 유명한 푸시킨이라는 옛 러시아 시인이 있다. 기자도 이 작가의 작품을 무척 좋아하는데, 특히 한 발이라는 짧은 소설을 즐겨 읽었다. 소설의 내용은 이러하다.


작중 군대 장교들 사이에는 명사수와 도박의 화신으로 명성이 자자한 실비오라는 시골 유지가 있다. 말이 없고 시종일관 진중한 실비오건만, 어느날 일개 신임 장교가 자신에게 시비를 걸어도 무엇 때문인지 꾸역꾸역 참아 잘 타이르고 만다. 이 일로 실비오는 한순간 겁쟁이라는 놀림까지 받는다. 얼마 안 가, 어디에선가 부쳐온 편지를 받은 실비오는 말도 없이 홀연히 사라진다.


그렇게 길을 떠난 실비오는 다름 아닌 과거 자신의 경쟁자이던 귀족 장교를 찾아 나선다. 일찍이 실비오가 혈기왕성하던 젊은 시절, 실비오는 한 귀족 장교와 시비에 휘말린다. 결국 당시 결투 풍습대로 실비와 귀족 장교는 서로 권총으로 한 발씩 쏘아 맞히게 됐는데, 귀족 장교가 먼저 총을 쏴 자신을 빗맞히고도, 태연자약하게 쏠 테면 쏴보라는 식으로 자신을 은연중에 놀린 일이 괘씸해 실비오는 한 발을 언젠가 사용할 목적으로 총을 거둔다. 이제, 귀족 장교가 처를 얻어 약혼까지 했다는 소식을 듣자, 실비오는 복수를 완성하기 위해 다시 경쟁자를 찾아 나선다.


실비오는 기어코 장교의 자택으로 찾아가, 아직 남아있는 빚을 청산하기 위해 결투를 하자고 강요한다. 장교는 명예가 걸린 일이기에,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응하고, 다시 한 번 제기 뽑기를 해 먼저 쏠 기회를 얻는다. 장교는 긴장해 실비오를 또 다시 빗맞혀 거실 뒤편의 애꿎은 풍경화에 탄흔만 남기고 만다. 실비오는 그만하면 됐다는 듯이, 겁에 질려 안절부절 못하는 약혼녀를 냉소적으로 무시하며, 자택을 유유히 빠져나가며 장교가 남긴 풍경화의 탄흔 자리에 정확히 겹치게 총을 발사한다. 그렇게 풍경화에는 두 겹의 탄흔이 남게 되고, 실비오는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영영 사라진다.


삶의 한 기간 동안을, 나아가 자신의 일생을 걸고 거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이 사업이 될 수도 있고,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이거나 큰 경기를 앞둔 운동선수일 수 있다. 공시생에게는 공무원 시험이 바로 그렇다.


흔히 우리는 자주 접하는 구청, 주민센터의 민원 공무원을 가리켜 철밥통혹은 무사안일주의라고 폄하한다. 실제로 일을 처리하는 모습을 어깨너머로나마 보면, 나태하다는 말이 나올 법함을 기자도 느끼지 못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젠가 한 번쯤은 그런 적이 있지 않던가. 더 큰 미래를 위해 속상한 적이 있어도 참고, 주위 사람들에게 무시당해도, 우리가 꿈꾸는 행복이나 이상을 위해, 혹은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감내한 적이 있을 것이다.


과장이 섞인 소설은 주인공 실비오를 복수귀로 그려놓아, 오직 상대를 이겨먹으려는 냉혈한으로 묘사했다. 그러나 일생의 목적을 위해 인내하고 인내하는 실비오의 뚝심이, 다름 아닌 현직 공무원들의 마음 한구석에도 여전히 뛰고 있다고 믿는다.


마찬가지로 현직 공무원들 역시 태어날 때부터 공무원 신분을 보장받은 것이 아니다. 모든 현직 공무원들은 과거 공시생이었던 시기를 보냈다. 어느 직급, 어느 직렬이든 모두 정당한 채용시험을 거쳐 적게는 수십 대 일부터 수백, 수천 대 일이란 가시밭길 경쟁률을 뚫고 어렵사리 쟁취한 자리이다. 그렇게 경쟁을 뚫고 올라와도 면접이나 체력시험에서 떨어질 수도 있다. 변수는 수없이 많다.


공무원이라면 누구나 일생의 한때나마 마음만은 실비오였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단 한 발, 서러움과 고난, 외로움을 참아내고 오직 한 발을 쏘기 위해 청춘의 한 칸을 접어둔 이들, 바로 우리 시대 대한민국 공무원이다.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