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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인터뷰] “당신의 마음을 수선해드립니다”

공무원들의 스트레스 해결사, 공무원예비학교 임영미 대표를 만나다






어제도 수십 개의 구겨진 마음들이 그녀를 향해 날아들었다. 가장 참기 힘든 스트레스를 종이에 적어서 구긴 뒤 앞으로 던져달라는 그녀의 주문에, 깨끗했던 백지는 이내 갖가지 사연들로 잔뜩 얼룩을 머금은 종이뭉치가 되어 돌아왔다.


이제 꼬깃꼬깃해진 종이를 조심스레 펼쳐 찬찬히 뜯어보고, 어떻게 하면 그들의 구겨질 대로 구겨진 마음을 제대로 수선할 수 있을지 그녀가 답해줄 차례다. 최근 신규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감정노동, 직무 스트레스 관리강의를 진행 중인 공무원예비학교 임영미 대표의 일과다. 24년간 공무원이라는 무겁고도 불편한 옷을 먼저 입어본 그만의 내공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하지만 그의 진정한 내공은 공감으로부터 비롯된다. 꼰대들의 단골 멘트인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말 대신 그와 비슷한 다른 경험자의 사례를 찾아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고 철저히 새내기 공무원의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따뜻함으로 잔뜩 구겨진 공무원들의 마음을 손질한다


그래서일까. 한 달 전만 하더라도 공무원 수험생들을 위한 면접 강의 일정으로 빼곡했던 그녀의 달력은 어느새 전국 곳곳의 지방공무원 연수 일정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만큼 그의 다림질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많다는 방증일 터다.


지난 8, 이튿날이면 또 다시 지방공무원 연수원 출강으로 운전대를 잡아야 하는 임 대표를 종로에 위치한 프리미엄 독서실 스터디피아에서 다시 만났다. 바쁜 시간을 쪼개 시간을 내 준 그녀의 손엔 신입 공무원들의 사연이 구구절절 담긴 종이뭉치가 한가득 들려있었다


상상 속에 박제된 공무원이 아닌, 현실 속에 살아 움직이는 공무원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야 공무원이라는 옷을 누군가는 조금이나마 편하게 소화할 수 있지 않겠냐는 판단에서였다. 그녀의 다림질을 필요로 하는 새내기 지방공무원들의 구겨진 마음들을 공무원저널이 함께 들여다봤다.

 

 

엎친 일에 덮치는 감정노동자, 공무원

 

현직공무원들의 스트레스는 일반 사기업 직장인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 역시 끊임없이 밀려오는 야근에 허덕이고, 수직적인 조직문화에 갑갑해 한다.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단체회식과 자신만의 저녁이 있는 삶 사이에서 고민하기도 한다


혹자는 뭐 그런 걸 갖고 그렇게 고민해? 요즘은 다 그렇게 살아라며 타박을 할지도 모르지만, 중요한 사실은 이 외에 공무원들만이 받는 다른 유형의 스트레스가 또 있다는 점이다.


업무의 매뉴얼이 없어서 스스로 알아서 일해야 하는 점이 힘들다는 고민들이 많았어요. 물론 민원과 직결된 문제들은 모두 매뉴얼이 있어요. 하지만, 민원과 연결되지 않는 일반 사무의 경우 매뉴얼이 없어 근무경험이 없는 신입들은 당연히 힘들어하죠. 또 상사가 업무교육을 제대로 시켜주지 않는다는 불만도 많아요. 이 부분은 오히려 제가 신입공무원으로 근무했을 때보다 심해진 것 같아요.” 


임 대표는 공무원 조직의 시스템과 최근 번지고 있는 개인주의적 성향을 문제의 원인으로 꼽았다


일반 기업의 경우 필요한 직무에 해당하는 적합인재를 채용해서 직무중심으로 업무가 진행돼요. 신규공무원들이 부러워하는 기업의 사수제도로 해당 직무 직속 선배가 신입직원을 꼼꼼하게 교육 지도가 가능하죠. 하지만 공무원의 경우 그런 시스템이 아니에요. 인사발령 한 장에 어디든 다른 부서로 이동해야 하기에 전임자가 같은 부서에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임자 역시 발령 난 곳에서 자신의 새 업무를 익히느라 바쁘죠. 기업과 다른 이런 특성 때문에 신규공무원들이 업무를 제대로 배울 수 없어 힘들어 합니다. 조직의 인적자원 관리 측면에서 가장 필요한 개선사항이에요.”


, 공무원은 합격해서 임용장을 받는 순간 모든 일이 자기 책임이 된다는 얘기다. 그나마 친절한 사수를 만나면 다행이지만, 사수가 자신의 일을 처리하는 것만 신경 쓰는 사람이라면 신입의 업무적응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감정노동의 일상화 역시 신입들이 버거워하는 스트레스 중 하나다. ‘진상을 부리는 민원인에게도 항상 친절한 자세를 유지해야 하는 민원업무도 힘들지만, 지역의 대표인 이장과의 관계 유지도 아직은 뻣뻣한 신입들에겐 부담스럽기만 하다.


사실 이장님들은 마을을 위해 봉사하고 행정을 많이 도와주시는 분들이기 때문에 이장님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 훨씬 원만하게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신규공무원들의 눈에는 선배들이 이장님을 대하는 모습이 굽신거리는 걸로 보이나 봐요. 신규들의 이런 생각은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죠. 다른 세대를 살았으니까요. 선배들이 신규들의 이런 다른 생각을 인정해 줘야 해요. 그리고 비굴하게 보일 만큼 굽신거릴 필요는 없지만 겸손하게 나의 일을 도와주는 파트너라고 마음을 먹으면 보다 관계유지가 수월해질 것이라고 후배들에게 조언해주죠. 그들의 눈높이에서는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안타깝기도 해요.”


결국 일반 직장인들이 늘 겪는 사회생활 스트레스 요인 외에 민원 응대와 감정노동까지 감내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워라밸을 꿈꿔왔던 새내기 공무원들의 환상은 빠르게 산산조각난다. 또 다시 자신만의 파랑새를 찾아 일찌감치 공직을 떠나버리는 신입 공무원들이 왕왕 발생하는 이유다






행복한 공직생활, 마음가짐으로부터 시작 된다

 

그렇다면 보다 행복하게 공직생활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임 대표는 공직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는 것이야말로 조기퇴직을 방지할 수 있는 첫 걸음이라고 조언한다.


사회적으로 여전히 공무원이 제일 편하다는 인식이 있죠. 그런데 그건 부모님 세대에서나 있었던 일이에요. 지금은 행정서비스가 굉장히 전문화되고 세분화됐기 때문에 공무원들이 처리해야 하는 업무량이 그 때와는 천지 차이에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빅 데이터를 분석하는 능력까지 9급 공무원에게 요구하는 시대가 됐는데 아직도 우리는 컴퓨터도 없던 시절의 공무원을 생각하고 있죠.”


1995년 지방자치시대가 열리면서 전국의 지자체가 하나의 사기업처럼 서로 경쟁하는 시대가 된 만큼 편한 일자리가 아닌, 치열한 사기업 현장에 입사한다는 각오가 있어야만 공직생활이 보다 수월하게 풀릴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는 바람직한 공무원상으로부터 발견되는 겸손의 미덕과도 연결된다. 공무원을 특권계층으로 여기며 사기업과 차별화되는 특별함을 바라고 입직한 이들은 고된 업무와 자기 자신을 낮춰야 하는 민원응대에 쉽게 피로감을 느낀다. 그만큼 공직생활에 회의를 느낄 가능성 역시 높아진다.


반면, 입직한 뒤에도 험난한 가시밭길이 펼쳐질 것을 예상한 이들은 이후 닥쳐오는 위기상황과 스트레스에 대해 보다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가끔은 자기 자신을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하는 민원응대도 수월해지기 마련이다. 임 대표가 공무원을 꿈꾸는 예비 공무원들에겐 다부진 각오, 이미 공직에 발을 들인 신입 공무원들에겐 배움의 자세를 꾸준히 강조하는 이유다.


임용 후 최소한 5년까지는 배워야 하는 시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으면 좋겠어요. 임용 후 5년까지의 기간이 하나의 큰 고비거든요. 그 고비를 학습자의 자세로 지혜롭게 넘기다보면 어느 정도 한 계단 올라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거에요. 그 때부터는 주도적으로 자신의 일을 설계하고 보다 공무원 조직을 큰 그림으로 바라볼 수 있게 돼요. 그게 바로 공직의 삶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