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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가난했던 소녀 “할 줄 아는 게 I’m a boy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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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 미모, 진솔한 인간미를 갖춘 공무원시험 줄리아 교수 인터뷰 ②
‘줄리아표 교수법’ 수험생의 응원이 있었기에 가능
65세까지 강단에 서고파, ‘학생 수 1위’ 타이틀에 도전

[공무원저널 = 강길수 기자] 텝스, 편입, 기초영문법, 수능, 토익을 거쳐 공무원시험까지. 스무살에 강의를 시작한 부산 소녀는 강산이 두 번 바뀐 오늘도 새벽 4시에 일어나 수업을 준비한다. 그간의 세월은 ‘일타강사’ ‘영어여신’ ‘믿듣(믿고 듣는)교수’ 등의 수식어를 선물했다. 그간의 노력은 수험생의 ‘존경’으로 가치를 인정받았다. 부산에서 시작해 ‘엄청난 강의력’이라는 평가와 함께 노량진으로 스카웃, 10년 가까이 공무원 수험생과 동고동락한 줄리아 교수. 부산 사투리와 허스키한 목소리, 차별화된 강의로 팬덤을 형성하며 매년 수많은 합격자를 배출한 그는 2020년에도 입지를 탄탄히 다졌다. 상대를 미소 짓게 하는 밝은 표정과 20년 경력에서 묻어나는 여유로움에서 그의 삶에 굴곡이 있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그 역시 치욕의 순간이 있었으며, 월세 7만원을 내지 못할 정도로 극빈한 학창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공무원저널의 5월 인터뷰 주인공은 실력, 미모, 진솔한 인간미를 두루 갖춘 줄리아 교수다.

Q. 누군가를 가르치게 된 건 언제부터인가?

20살 때 대학교 등록금을 벌기 위해 과외와 강의를 한 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생계형으로 시작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 일이 아니면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적성에 잘 맞고 강단에 서는 게 재밌습니다.

 

Q. 어느 정도로 가정 형편이 안 좋았나?

극빈층이죠. 재래식 화장실이 있는 부산 달동네 슬레이트 집에서 살았습니다. 월세가 7만원 정도였는데 그걸 내기가 힘들 정도로 가난했죠. 그렇게 힘든 데도 부모님은 독서실비 등 자식 공부를 위해서라면 어떻게든 돈을 마련하셨어요. 어떻게 보면 그렇게 가난했기에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고, 그게 이어져 지금껏 강의를 하고 있지 않나 싶어요. 가난이 제 성장의 원동력인 셈이죠.

 

Q. 많은 과목 중 영어를 선택한 계기는 무엇인가?

과장해서 말하자면 할 줄 아는 게 “I’m a boy”밖에 없었어요. 수학 머리도 떨어지고 공간지각능력도 평균 이하죠. 하지만, 영어만큼은 좋아했고 또 잘 했어요. 초등학생 때는 팝송을 듣기 위해 무릎이 다 까질 정도로 롤러장에 살았던 기억이 납니다. 어느 날 아버지께서 “민정아, 너는 우리나라가 영어를 쓰는 나라라서 먹고 사는 거다”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영어가 아니었다면 저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었을 거에요.

 

Q. 줄리아는 어떤 학생이었나?

고등학교 때는 웃긴 걸로 유명했어요. 관찰을 잘 하는 편이라 선생님 흉내를 자주 냈었는데 배꼽잡고 웃는 친구들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또 친구들의 고민을 잘 들어주는 학생이었습니다. 가정 형편만으로는 제가 더 힘든 상황이었지만, 친구들의 얘기를 듣고 해결책을 잘 제시해줘 친구들이 많이 따랐습니다. 학업 성적은 초등학교와 중학교때 까지만 해도 매일 놀았기에 반에서 중간 아래였어요. 그러다 중3 겨울방학부터 영어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위해 인문계 진학을 목표로 잡았고 고등학교 가서는 반 60명 중에 늘 1, 2등을 했던 것 같아요. 머리는 안 좋은데 하고 싶은 게 있으니 엄청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Q. 수능, 토익, 공무원 등 다양한 분야의 강의를 진행한 것으로 알고 있다

맞습니다. 처음엔 텝스로 시작했고 편입, 기초영문법, 수능, 토익 등의 강의도 했죠. 공무원 강의를 시작한 건 10년 정도 됐어요. 부산 공무원학원에서 1년 정도 하다가 서울 노량진학원의 스카웃을 받고 이후 공무원 수험생을 계속 가르치고 있습니다.

 

Q. 가장 잘 맞는 분야는 무엇인가?

공무원입니다. 토익과 달리 인문학과 영어의 접점을 찾아 출제되다 보니 제가 갖고 있는 철학적인 생각이나 성찰의 태도 등을 잘 녹여낼 수 있는 것 같아서요. 또 어린 학생들보다 성인 분들과 소통하는 게 더 수월하기도 해요. 다들 목표가 있으셔서 그런지 강의를 해도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차이를 느낍니다.

 

Q. 교수라는 직업을 가진 후 가장 슬펐던 순간은 언제인가?

슬펐다기보다는 치욕적인 순간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4년 전 노량진에 스파르타 영어가 붐을 일으켰습니다. 하루 종일 영어를 주입하고 성적을 끌어올리는 교수법이었죠. 꾸준히 영어를 접할 수 있다는 건 좋았지만, 중학생 수준의 강의였습니다. 한 날은 제가 하는 강의실 앞에 ‘지금 하는 수업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스파르타 영어로 오세요’라는 홍보 게시물이 붙어 있기도 했죠. 철학과 인문학의 접점을 가르치는 강의를 중학교 수준의 영어와 비교된다는 게 치욕적이었습니다. 더 치욕스러운 건 그런 질 낮은 강의를 오히려 일부 학원 관계자나 수험생들이 더 인정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Q. 질적으로 떨어진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공무원 영어는 일반 토익보다 수준이 높습니다. 토익은 인문학, 철학, 시사가 없고 비즈니스 용어이기 때문에 읽은 그대로 해석하면 됩니다. 하지만, 공무원 시험은 추상성이 매우 높은 지문으로 구성됩니다. 예를 들어 ‘그녀는 현대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다’라는 문장이 지문에 있다면 현대적인 마음이 무엇을 말하는지 본문 전체를 파악해야만 알 수 있습니다. 본문에 따라 이기적인 마음일 수도, 세련된 마음일 수도 있겠죠.

 

그런데 이러한 공무원시험의 수준을 무시한 채 중학교 수준의 강의와 문제풀이를 하며 이것만 하면 80점이 나온다는 과장 광고로 수험생들을 현혹시키는 모습에 화가 났습니다. 그 수준에만 머문 학생들은 수동적인 영어만 하다보니까 바보가 돼 버렸죠. 그 강의를 듣고 시험을 치른 수험생들은 “막상 시험장을 가니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 지 모르겠더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결국 그러한 강의는 쉬운 영어에 대한 환상만 주고, 급격히 인기가 식었죠. 예전처럼 시험이 쉬울 때는 그러한 교수법이 먹혔을지 몰라도 상향평준화된 최근의 시험에는 전혀 적용할 수 없습니다.

 

Q. 기억에 남는 제자가 있다면 누구인가?

비가 많이 오는 날 갑자기 한 학생이 연구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 왔어요. 비 맞은 머리에 후줄근한 옷차림, 거친 행동까지. 범상치 않은 모습에 당황했었죠. 줄리아 교수가 맞냐고 물어본 그 학생은 대뜸 “저를 구원해 줄 것 같아서 찾아 왔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흥분 상태인 학생을 진정시킨 후 3시간 가까이 속내를 서로 터놨습니다. 그 학생은 그해 1점차로 시험에 떨어졌고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부모님도 돌아가실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여자친구마저 이별을 고하자 그 길로 제게 찾아왔습니다. 일면식도 없었지만 강의를 보면서 자신을 합격으로 이끌어 줄 것 같은 느낌이 왔다고 하더라고요.

 

고맙게도 상담을 한 바로 다음날부터 그 학생은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로 제 아침 수업을 하루도 빠지지 않았고 현실은 어려웠지만, 합격이라는 목표 아래 마음을 다 잡았고 이듬해 합격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눈 내리는 화이트 크리스마스에 합격 소식을 전하는 그 학생의 떨리는 목소리를 들었을 때, 정말 고맙고 감동적이었습니다. 첫 월급 때는 직접 찾아와 삼계탕을 사 주고 지금도 안부를 묻는 그 학생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Q. 새벽 4시에 기상한다는데…하루 일과가 궁금하다

20대 중반까지 재수종합반 강의를 할 때까진 일과가 불규칙했어요, 하지만 그 이후 토익과 공무원시험을 가르치면서부터는 20년 가까이 새벽 4시에 꼭 일어납니다.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건 유튜브 강의를 보거나 책을 읽는 거에요. 미술사, 음악사, 철학사, 정치사 등 영어와 관련 있는 모든 학문을 꼼꼼히 챙깁니다. 다음으로 반신욕을 하는데 이 역시 제겐 매우 중요합니다. 하루 강의를 미리 그려보고 어제 강의를 듣는 수험생들의 반응과 태도를 되새겨보는 시간이죠. 이 시간만 되면 챙기지 못했던 학생들이 떠오르는 등 부족했던 부분을 점검할 수 있는 금쪽같은 시간입니다.

 

이어 6시 20분에 출근하고 아침 강의를 진행한 후 4시간 정도 책을 읽습니다. 100페이지 분량의 책을 인터넷으로 보면서 5페이지 분량으로 줄이고 중요한 표현들과 단어들을 정리합니다. 정말 졸리거나 하기 싫을 때면 7080 노래를 30분 정도 듣기도 하고 운영하는 카페와 유튜브 채널의 질문에 답변하기도 합니다. 또한 1대1 과외하듯 수험생을 불러 연구실에 앉혀 가르치기도 합니다. 이렇게 9시까지 연구실에서의 일과를 마치고 10시 쯤 도착해서 청소하고 내일 수업 구상하면 벌써 11시죠. 취침 시간 5시간을 지키기 위해 보통 11시면 잠자리에 듭니다.

 

Q. 워낙 경쟁이 치열한 곳이다. 이에 대한 스트레스는 없는가?

스트레스를 받았다면 20년 넘게 이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스트레스는 없었습니다. 수업시간에 학생들하고 즐거운 얘기하면서 웃고, 슬플 때는 울고, 화날 때는 소리 지르다 보니 스트레스가 머물 시간이 없었던 것 같아요.

 

경쟁이 치열한 만큼 자기발전을 해야 한다는 점도 이 직업의 장점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예쁘고 젊은 선생님들이 밤낮 안 가리고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면 패기와 열정이 다시 샘솟기도 합니다. 다만 외모에만 너무 치중한 나머지 본질을 잊은 볼 때면 안타까운 맘이 들 때도 있어요. 초반에 수험생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 외모는 분명 좋은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롱런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을 통한 자기만의 교수법이 있어야 함을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Q. 줄리아 교수의 월드 헤럴드는 무엇이 다른가?

툭 터놓고 말해서 호불호가 확실히 갈리는 강의입니다. 객관식 풀이에만 익숙한 수험생이 주관식 문제를 접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하지만, 분명한 건 갈수록 수강생이 늘어난다는 점입니다. 공무원시험이 어려워지면서 제가 설득을 하지 않더라도 기존의 방법으로는 성적을 올리는 데 한계가 있다고 학생들이 생각하는 것 같아요. 또 30점 받던 B 친구가 85, 90점을 받기 시작하니까 기존 70점을 받던 A 수험생도 강의를 등록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제 수업은 앞서 말한 대로 문제은행식으로 기출문제를 변형하거나 모의고사 문제를 출제하지 않습니다. 양적인 객관식 문제보다는 질적인 주관식 문제를 통해 학생들이 직접 생각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수업입니다. 월드 헤럴드는 어려워지고 있는 영어 시험에 가장 최적화된 강의라고 자부합니다.

 

Q. 줄리아 교수에게 수험생들은 어떤 의미인가

정체성을 지켜준 소중한 분들입니다. 처음 월드 헤럴드 강의를 오픈했을 때만 해도 어렵다는 이유로 오해도, 공격도 많이 받았어요. 헤럴드 말고 다른 강의부터 들으라는 선생님들도 계셨죠.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많이 힘들었어요. 열심히 해도 알아주지도 않는 거 해설지 베껴서 쉽게 강의하는 일부 무리들처럼 할까 생각도 아주 잠깐 했던 것 같아요.

 

그 마음을 바로 잡아준 게 수험생들이었습니다. “절대 상업성과 타협하지 말라“ ”시험에 나오지도 않는 쉬운 강의를 해버리면 학생들도 선생님에게 실망할 것“ ”꼭 인정받는 날이 올 테니 지금 하고 계신 수업의 질을 떨어뜨리지 말아달라“는 학생들의 의견을 수업 시간에 들었습니다. 이러한 수험생의 목소리가 있었기에 정체성을 지킨 채 지금까지 강단에 설 수 있었습니다.

 

Q. 교수라는 직업의 매력은 무엇인가?

존경받는다는 점입니다. 제가 하는 이 일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도 존경한다는 표현을 해 주는 수험생들의 말을 들으면 참 기분이 좋습니다. 전 존경에 대한 목마름이 심한 것 같습니다. 제가 강의를 했다는 사실이 제가 죽은 후에도 회자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Q. 최종 목표가 궁금하다

크게 두 가지입니다. 먼저 65세까지는 팔팔 날아다니면서 강의를 하고 싶습니다. 선택을 받는 입장이기에 어려울 수는 있겠지만, 그때까지 제 경쟁력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조금의 흐트러짐도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이후로는 후배들을 양성하면서 책을 쓰고 공익사업을 하는 쪽으로 노력할 생각입니다. 다음으로는 ‘학생 수 1위’를 하고 싶습니다. 만약 1등이 된다면 제 월급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수익의 반을 강의하는 마지막 날까지 장학사업에 쓰고 싶습니다.

 

Q. 끝으로 수험생에게 조언을 전한다면?

가혹하다고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지금보다 더 해야 합니다. 코로나 때문에 불편한 것도 많았을 테고 좀처럼 탄력을 받지 못한 수험생도 많을 것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조금만 더 한다면 합격 가능성은 크게 뛸 것입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을 때 수험생활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지방직은 1달, 국가직은 2달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온 몸이 부서지도록 더 열심히 하시기를 당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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