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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공무원 칼럼] 낙서는 창조의 씨앗, 메모는 차이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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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저널 = 이현준] 수험공부를 하다보면 포스트 잇(Post-it) 등을 활용해 메모를 하게 된다. 수험서 내용에 추가 내용을 덧붙이거나 수험 계획이나 개인 일정 등을 잊지 않기 위해 메모지에 적곤 한다. 메모를 하는 이유는 개인 기억력의 한계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기억력이 좋아도 여러 일을 하다보면 잠깐 떠올랐던 생각은 잊게 마련이다. 그리고 가끔은 중요한 일도 생각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필자도 전에는 개인 기억력을 과신(過信)하고 메모를 하지 않은 적이 많았다. 공직에 임용된 후 초기에는 상사의 지시를 받을 때 상사의 이야기에 집중하다보니 메모를 정확하기 하지 못했다. 그래서 지시를 받고 나오는 순간 상사가 했던 이야기는 마치 신기루(蜃氣樓)처럼 사라지고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래서 상사의 지시를 복기(復棋)하는 것이 힘들었고 지시와 다르게 일을 처리했던 경우도 있었다.

 

하루는 업무 지시를 받는데 갑자기 상사가 이야기를 멈추고 내게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이 주무관, 내가 이야기한 것 다 기억할 수 있겠어? 머리로 기억하기보다 업무수첩에 메모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상사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멍해지는 기분이었다. 나름 업무수첩에 적는다고 했지만 그 말을 듣고 막상 업무수첩을 보니 적은 것이 별로 없었다. 상사의 이야기는 꾸지람이기보다 필자에 대한 진심어린 조언이었다.

 

그 이후부터 상사의 지시를 받거나 회의를 할 때 등 필기가 필요할 때에는 최대한 많이 적으려고 노력했다. 가끔은 메모한 내용을 알 수가 없을 때도 있지만 메모를 보면서 그때 상황을 떠올리니 대략적으로 그 상황에서 이야기했던 것이 기억나곤 했다.

 

우리는 환경 적응의 중요성을 이야기할 때 ‘적자생존(適者生存)’을 말하곤 한다. 이러한 적자생존은 공직에서도 당연히 적용된다. 그러면 어떻게 적자생존을 할 수 있을까? 그 해답은 바로 ‘적자생존’ 말 자체에 담겨있다. 공직에서는 적어야(적자) 살아남는다(생존). 그리고 적(는)자가 도태되지 않는다. 조금은 말장난처럼 들릴 수 있지만 필자의 직‧간접적인 경험을 비춰보면 정확한 표현이라 생각한다. 필기나 메모를 잘 하는 사람이 공직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낙서와 적기는 창조의 씨앗이고 메모와 기록은 차이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메모나 기록은 업무의 정확성과 효율성은 물론 신속성까지 담보한다.

 

주변에서 일을 잘하거나 능력이 돋보이는 사람들을 관찰해보자. 그리고 그들의 업무수첩을 우연히 살펴보자. 그러면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메모나 기록이 빠짐없이 잘 되어 있다는 것이다. 위에서 이야기한 장점 이외에 메모와 기록이 주는 좋은 점에는 무엇이 있을까?

 

첫째, 상사의 지시를 받거나 회의 등에 참석할 때 상대방이나 참여자들에게 신뢰감과 성실성을 보여줄 수 있다. 메모나 필기를 할 때 나의 이야기를 더 경청하고 능동적으로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둘째, 메모나 기록은 맡은 일을 해나가는 원천이자 동력이 된다. 사소한 내용이지만 실마리가 풀리지 않을 때 작은 단초(端初)를 제공할 수 있다. 아울러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보완하고 수정하는 데도 메모나 필기를 활용하게 된다.

 

셋째, 메모나 기록은 업무을 수행함에 있어서 자신의 보호막이 될 수 있다. 공무를 수행하게 되면 책임이 따르기 마련이다. 책임 소재가 애매한 경우 이를 판별하기 위해서는 업무를 했던 당시 정확한 정황이 필요하다. 꼼꼼하게 잘 정리된 메모는 이러한 상황을 정리하는 역할을 하는 것은 물론 자신의 책임 범위를 규정할 수 있는 좋은 방어막으로서 역할을 톡톡히 한다.

 

그렇지만 메모와 필기 그리고 낙서의 가장 큰 장점은 개인의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밑바탕이 된다는 것이다. 업무는 물론 개인 측면에서도 기발하면서도 창의적인 생각의 출발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행정 환경이 더욱 복잡해질수록 공직 생활의 난이도는 더 높아질 거라 본다.

 

녹록치 않은 공직 생활에서 살아남기 위한 첫 단추는 바로 메모와 필기이다. 적자(적는 사람)를 이길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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