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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기고
  • 기자명 김예진 기자

[기자수첩] CU '인간사료' 콘셉트, 센스와 선 넘기는 한 끗 차이

  • 입력 2021.07.28 16:57
  • 수정 2021.07.29 09:52
  • 댓글 0
CU가 선보이는 한정판 '콘소메맛 팝콘' [사진=BGF리테일]

CU편의점의 한정판 상품이 '인간사료' 콘셉트로 출시됐다. 인기 스낵 '콘소메맛팝콘'의 출시 10주년 기념 제품으로 가로 32cm, 세로 43cm, 폭 14cm에 달해 쌀포대와 비슷한 크기의 대용량 제품이다.

'인간사료'는 온라인에서 네티즌들이 '양 많고 값 싼 대용량 식품'을 이를 때 흔히 쓰는 신조어다. 시간적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식사를 즐기기 보다는 빠르고 간편하게 끼니를 해결한다는 의미, 혹은 대용량 포장으로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출시된 제품을 동물 사료에 빗대어 '인간사료'로 표현한다.

사료의 사전적 의미는 '가축에게 주는 먹을거리'다. 보통 대용량 포대자루 형태로 취급된다. 축사의 소, 돼지 사료나, 반려동물로 함께하는 개나 고양이의 사료가 그렇다. 참고로 초식동물용 건초 사료는 '여물', 새의 사료는 '모이' 등 특징에 따라 다르게 부르기도 한다.

'인간사료'라는 표현을 누가 처음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인간을 동물이나 가축에 비유하는 자조적 위트가 섞인 표현으로 사용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다양한 '인간사료' 추천도 이뤄진다. 가장 유명한 것이 △7500원 짜리 3.2kg들이 대용량 건빵 △2.5kg들이 누네띠네 과자 등이다. 대용량 냉동 볶음밥 등 즉석 식품도 주머니 사정이 얇은 취준생들이나 사회 초년생들 사이에서 '인간사료'로 불리는 아이템이다.

CU는 28일 고객이 소비하는 과자를 사료라고 소개했다. 패키지 역시 사료가 동물의 주식이듯, 한국인의 주식은 쌀이기 때문에 패키지 디자인을 쌀포대처럼 준비했다고 해석된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우스꽝스럽고 자조적으로 사용되는 표현을 막상 대기업의 신제품 콘셉트로 듣게돼 적잖게 놀랐다.

이 표현은 인터넷에서 흔히 쓰이는 표현이라지만 한 끼 식사를 제대로 하기 어려울 정도로 바쁜 현대인, 제대로 된 식사를 하기 어려울 정도로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을 '가축'에 빗대어 낮춰 부르는 의미도 한편으로는 내포됐기 때문이다.

인격을 낮추는 표현은 경우에 따라 유머러스하고 센스있는 문구가 될 수 있지만, 다른 한 쪽에서는 불편함을 야기할 수도 있다. 특히 스낵 제품의 경우 고객을 가축'으로 취급하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도 있다.

실제로 기자 주변의 20~40대 지인들 대부분이 사람 먹는 제품에 '사료' 컨셉트가 적용됐다는 것에 대한 불쾌함과 불편함을 느낀다고 답했다. 온라인 공간에서 커뮤니티 유저들이 편하고 위트있는 표현을 쓰는 것과, 대기업의 마케팅 포인트가 '인간사료'인 것은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찾아보니 CU가 해당 표현을 사용한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9년 5월에도 CU는 '곰표 팝콘'을 출시하며 인간사료 콘셉트를 적용했다. CU는 이같은 지적에 별다른 문제는 없다는 입장이다.

편의점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 관계자는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대용량을 많은 곳에서 나름 위트있게 표현하고 있어서 사용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해당 표현 사용에 무리가 있지 않냐는 의견에는 "뭐라고 말씀드리기 좀 그렇다"고 답했다.

오랜 시간 사랑받아 온 '콘소메맛팝콘'이 '인간사료' 콘셉트로 판매된다. 사람의 먹거리를 '사료'라고 낮춰 부르며 우스꽝스럽게 표현한 것을 대기업이 제품 콘셉트에 적용하고 공식적인 광고 문구로 사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센스와 선을 넘는 것은 한 끗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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